열한 명이 묵을 집을 찾다가, 교회 사택에 닿았다
8월의 끝자락이었습니다. 몇 달 전부터 계획한 여행은 아니었습니다. 자코와 니자를 포함한 세 가족이 같이 놀다가 “여름 끝나기 전에 애들 데리고 한번 다녀오자”고 해서 급하게 잡은 일정이었습니다. 문제는 인원이었습니다. 한 집에 아이가 많아 전부 열한 명. 호텔로는 답이 안 나오는 숫자입니다.
결국 니자가 검색 범위를 넓혀 업스테이트 캐스킬에서 저택 한 채를 찾아냈습니다. 요즘 에어비앤비에는 멀쩡한 저택을 인수해 직접 관리하며 운영하는 전문 호스트들이 있고, 그 호스트의 리스팅만 따로 모아 볼 수도 있습니다. 조건이 맞으면 부동산째로 매각하기도 하는 방식입니다.
가서 보니 그 집은 원래 교회 사택이었습니다. 교회와 나란히 붙어 있고, 크기도 교회만 합니다. 침실이 다섯에 패밀리룸과 거실이 따로 있어서, 아이들은 패밀리룸에 몰아 재워도 될 정도였습니다. 데크는 사면을 둘렀습니다.
건축하는 독해가 여기서 다른 걸 읽어냅니다. 그 길이 캐스킬의 메인 스트리트였고, 미국 동네의 가장 중요한 거리에는 원래 교회들이 경쟁적으로 들어섭니다. 건너편에도 교회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말을 끼고 묵는 동안 교회에 사람이 오지 않았고, 일요일 오후에 예배 소리가 잠깐 들린 게 전부였습니다. 교세가 줄면서 사택을 내놓은 겁니다. 좋은 집이 시장에 나오는 데에는 대체로 그런 사정이 있습니다.
관광은 없었다. 삼시 세끼만 있었다
집이 좋아서 어디 나갈 마음이 들지 않았습니다. 계획은 단순해졌습니다. 여기서 밥 해 먹고 놀자.
세 집 다 일 잘하는 사람들이었다는 게 니자의 평입니다. 말하지 않아도 각자 할 일을 찾아 움직였고, 엉덩이가 가벼웠고, 무엇보다 다들 먹는 걸 좋아했습니다. 한 집이 횟집을 해서 회를 잔뜩 싸 왔고, 나머지는 고기파였습니다. 육해공이 다 갖춰졌습니다. 회를 잘 못 먹는 아이들에게는 밥만 따로 내주고 연어 초밥을 직접 만들어 보게 했습니다.
“그럴 거면 뭐 하러 캐스킬까지 가나, 뉴저지에서 놀지.” 원래의 지적에 니자가 답합니다. 뉴저지에서는 밤새 놀고 올 수가 없잖아요. 그러려고 간 겁니다.
볶음밥을 맛없게 만드는, 그 어려운 일
캐스킬에서 다리 하나만 건너면 허드슨입니다. 자주 가는 동네고, 지금까지는 어디를 들어가도 맛있었습니다. 그날 첫 끼는 랜덤으로 고른 식당이었습니다.
메뉴판을 펼치자마자 신호가 왔습니다. 한식당이 아닌데 김치가 있었습니다. 자코의 표현으로는 “동남아 한 번 갔다 온 백인이 만든” 태국식 비슷한 퓨전. 열한 명이 앉을 야외 테이블이 있고 예약 없이 워크인이 되는 것부터 의심했어야 했습니다.
제일 만만한 볶음밥을 시켰는데, 그걸 맛없게 만들어 왔습니다. 양은 3인분이었고 값은 비쌌습니다. 그러다 옆자리 대화가 들려옵니다. 주인이 바뀐 지 얼마 안 돼 음식이 이상해졌고, 그래서 사람들이 음료만 사 간다는 겁니다. 여행지의 소중한 한 끼였습니다. 돈 내고 먹은.
옆자리에서 노트북을 두드리던 사람
같은 허드슨에서 자코가 옆 테이블 사람을 알아봅니다. 저 사람 그 사람 같은데. 사진을 찍어두고 검색해 봤더니 말콤 글래드웰이었습니다. 『아웃라이어』, ‘1만 시간의 법칙’을 쓴 그 사람입니다. 니자가 “웰컴 글래들리”라고 부르는 바람에 잠시 소동이 있었지만, 부부는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습니다.
독해가 배경을 보탭니다. 그는 『블링크』처럼 사람들이 몇 초 안에 구매를 결정한다는 식의 행동경제학 책을 여러 권 쓴 저자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책보다 팟캐스트 쪽이 더 유명합니다. 회사가 맨해튼에 있고, 분점이 허드슨에 있다고 합니다. 원래의 평가는 짧습니다. “우리 경쟁자야.”
난데없이 그가 거기 있었던 게 아닙니다. 코로나 이후 그 계층이 업스테이트로 대거 옮겨 갔고, 허드슨은 그 흐름의 한복판입니다. 카페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그런 사람일 수 있는 동네가 된 겁니다.
떠나는 아들이 채워놓고 간 냉장고
독해와 원래의 큰아들이 대학 1학년을 마치고 미 해군 입대를 택했습니다. 굳이 왜 군대냐고 묻자 아이는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나의 한계를 시험하고, 한 번 제대로 돌파해보고 싶어요.” 학비 때문이냐고 재차 묻던 엄마 원래는 결국 성악 전공자의 복식호흡으로 소리를 질렀습니다. “누가 너한테 돈 대래!”
떠나기 전날, 아이가 한 일은 지하실 냉장고를 채우는 것이었습니다. 직접 빚은 막걸리 24병. 아빠 독해가 “군대 갈 거면 말고 아빠랑 집에서 막걸리나 만들자”고 했던 그 막걸리입니다. 정작 챙겨 간 짐은 신분증과 카시오 시계, 흰 팬티 8장, 손톱깎이가 전부였습니다. 3층 방은 비었습니다.
99점을 받고 팻 디비전으로
훈련소에서 온 소식은 예상과 조금 달랐습니다. 시험은 100점 만점에 99점. 그런데 근육량 측정이 어긋나면서 과체중 소대, 이른바 ‘팻 디비전’으로 분류됐습니다. 옆자리에는 13점과 14점을 받은 훈련병들이 있었고, 둘은 밤새 싸웠습니다. 아들이 전한 불평은 의외로 단순했습니다.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자겠다는 것.
테크 병과의 얼차려도 독특합니다. 몸으로 굴리는 대신 밤에 재우지 않고 노트를 쓰게 합니다. 우리 식으로 하면 깜지입니다. 대학 강의실에서는 만날 일이 없던 사람들과 방법들입니다.
지켜보는 일
시카고에 도착한 아이의 첫 전화는 30초 만에 끊겼습니다. 복도에 줄을 세워놓고 도착 보고만 시키는 방식입니다. “엄마, I love you.” 그게 전부였습니다. 그 사이 아이는 훈련소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졸업식은 10월 15일입니다. 빈방을 정리하는 마음이 서운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지금 부모가 하는 일은 아이가 스스로 정한 길을 지켜보는 쪽에 가깝습니다. 냉장고에는 아직 막걸리가 남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