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WD 4-054, 뉴욕씨를 만나다 – 단역배우 김순효씨, 소설가 이수정님 PART 1
2025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단역배우 김순효씨’로 대상을 수상하시고 등단하신
소설가 이수정님을 모시고 뉴욕씨를 꾸몄습니다.
신춘문예는 무엇이고 ‘등단’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생소하지만 많이 들었던 소설가의 세계, 문학의 세계로 여러분들을 초대합니다.
신춘문예로 등단하시기전까지 모든 경력은 수정님을 소설가로 만들어온 과정이 아니었나 싶네요. 소설이야기전 미국땅에서 살아온 생활인 이수정님의 이야기부터 풀어드립니다.
이름 한 글자만 바꿨습니다
소설 <단역 배우 김순효 씨>의 주인공 이름은 작가의 어머니 성함에서 가운데 한 글자만 바꾼 것입니다. 아버지가 두 집 살림을 하다 밖에서 낳은 아이를, 본가의 김순효 씨가 거두는 이야기. 어디까지가 실화냐는 질문이 따라붙을 수밖에 없는 설정입니다.
그런데 작가의 대답은 단호합니다. “어디까지가 픽션이고 넌픽션인지 여쭤보는 분들이 많은데, 사실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실화 기반 영화를 보면 나무위키부터 켜는 우리에게는 조금 낯선 태도입니다. 이름을 바꾼 이유도 진실을 감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수적인 어머니 세대가 “지키셔야 될 걸 존중해 드리는 마음”에서였습니다. 폄하되는 인생은 없지만, 그렇다고 불필요한 오해를 만들 필요도 없다는 것이죠.
57세, 그리고 30명
작가가 신춘문예로 등단한 것은 57세 때입니다. 본인은 이 숫자를 이렇게 눙칩니다. “제 나이를 비교할 때 연예인들과 비교하면 되게 빨라 보여요.” 김희애, 박미선, 김성령이 모두 같은 67년생이라는 것이 근거입니다.
한국에서 소설가가 되는 길은 생각보다 좁습니다. 30여 개 일간지가 12월 말 비슷한 시기에 공모를 받고 발표하니, 매해 단편소설 당선자는 30명 남짓. 그 좁은 문을 지나야 하는 이유는 명예가 아니라 청탁입니다. <문학동네> 같은 문예지의 청탁을 받아 발표해야 이상문학상이나 김유정문학상 후보에 오를 수 있고, 그래야 독자를 만날 무대가 생깁니다. 콩쿠르에 입상해야 연주 의뢰가 들어오는 구조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작가는 소설을 혼자 하는 일로 보지 않습니다. “소설은 내면을 고백하는 장르라 혼자 한다는 오해가 많은데, 독자를 만나야 비로소 예술로 빚어집니다. 누군가에게 닿고 나누는 공유가 없으면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88쪽, 그리고 인수인계자 없음
사회생활의 시작은 대기업 계열사의 사보 기자였습니다. 그런데 출근해 보니 전임자가 이미 없었습니다. 갈등을 빚고 나간 자리라 인수인계도 없었고, 오더를 준 과장님조차 사보 만드는 법을 몰랐습니다. 갓 졸업한 신입에게 떨어진 것은 A4 88쪽짜리 사보 한 권. 컬러 지면에 대표이사 말씀부터 사원들의 글까지 다 들어가야 하는 물건이었습니다. 사내방송 아나운서까지 겸직이었고요.
“내 인생 처음으로 완전히 From the scratch, 맨땅에 헤딩을 해야 되는 순간이 왔는데 너무너무 무서운 거예요.” 글자 하나하나가 무서워서 ‘내가 잘못해서 경찰에 잡혀가는 거 아닌가’ 생각까지 했다고 합니다. 첫날에는 울었습니다.
그런데 첫 달에 해냈습니다. 3천 명 임직원이 자기 이야기가 실린 사보를 열심히 읽는 걸 보고 ‘내가 그만두면 안 되겠다’ 싶었다고요. 36년이 지난 지금도 그 얘기를 하다 울컥합니다. “무서웠고, 울었고,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봤던 그 경험이죠. 그때 겪었던 경험이 평생을 지배하는 것 같아요.”
이후 사내 연애를 꺼리는 회사 분위기 탓에 광고회사로 옮겨 카피라이터가 됩니다. 광고판 이야기가 나오자 스튜디오 공기가 잠깐 바뀝니다. TV 광고 후반작업을 했던 니자가 “정말 학대당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하자 작가가 받습니다. “한국 광고 업계가 약간 학대죠.” 다만 본인은 운이 좋았다고 덧붙입니다. 클라이언트와 직접 미팅하며 진행했고, 팀이 일을 잘해서 대행사의 험한 꼴은 별로 겪지 않았다고요.
뉴욕타임스를 끼고 앉아 있던 마당
2000년, 작가는 렌트가 저렴하고 남편의 맨해튼 통학 버스가 가까운 클리프사이드 파크에 자리를 잡습니다. 한국에서 영어는 어드밴스드 클래스였습니다. 그런데 블록버스터 비디오 가게 캐셔가 묻는 말을 하나도 못 알아듣겠더랍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회원권이 있느냐, 가입하겠느냐는 말이었습니다.
좌절한 끝에 뉴욕타임스를 끼고 마당 앞에 차려입고 앉아 독해를 합니다. 그러면 지나가던 옆집 아주머니 아저씨가 “너 그거 읽을 줄 알아?” 하고 묻습니다. 정작 그분들도 그걸 읽지는 않았습니다. 아이가 다니던 유치원은 열한 명 중 아홉이 ESL이었고, 아이 입이 트이지 않자 결국 레오니아로 이사합니다.
그리고 그해에 9·11이 터집니다. 학교 간다고 나간 남편이 곧바로 돌아옵니다. 버스가 오지 않고, 멀리서 검은 연기만 올라온다고.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텔레비전을 켜니 비행기가 충돌하는 화면이 반복해서 나옵니다.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죠. 저게 뭐야? 영화의 한 장면이야?” 자막이 흐르고 나서야 무슨 일인지 알았습니다. 알파벳부터 다시 가르치던 낯선 땅에 그 나라의 혼란까지 겹친, 이중고의 시작이었습니다.
필름이 끊긴 지점
25년이 지난 지금, 작가는 더 이상 한국과 미국을 비교하지 않습니다. “한국이 좋은 건 좋은 거, 미국이 좋은 건 좋은 거.” 다만 돌아가고 싶어도 못 돌아가는 이유가 하나 생겼습니다. 언어가 아웃데이트되는 것이죠. 말은 하지만 지금 한국에서 사는 사람들의 ‘리빙 컬처’가 업데이트되지 않습니다.
한국에 가서 동창들을 만나면 다섯에서 열 명이 둘러앉아 같은 말을 합니다. “너 왜 이렇게 과거에 살아?” 작가에게는 재밌는 옛날 얘기인데, 친구들에게는 지금 진행 중인 삶에 방해가 되는 이야기입니다. 깻잎머리 하고 다니던 시절을 자기 아이가 알까 봐 걱정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작가에게는 그 이후가 없습니다. “내 필름이 거기서 끊겼기 때문에 내 역사는 거기엔 없으니까.”
그래서 어우러지는 법을 배웠습니다. 요즘 동창회에 갈 때는 트레이더조 에코백이나 빅토리아 시크릿 미니 향수 같은 걸 챙겨 갑니다. “선물 좀 풀고, 내 얘기 들어줘.” 만나주는 걸 당연하게 여겼던 초기의 실수를 인정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한국의 키오스크 앞에서도 비슷한 소외를 겪습니다. 헤매고 있으면 뒤에 선 줄이 짜증을 내고, 직원에게 도움을 청하면 “키오스크로 가세요”라는 답이 돌아옵니다. 작가는 여기서 한국 시스템이 사람에 대한 스탠다드를 아주 높게 잡고 설계됐다고 봅니다. 미국은 기대치를 낮게 잡고 그 리스크를 비용에 포함시키는 쪽이고요.
높은 기준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다만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적응해야지”라고 말하는 순간의 강요를, 작가는 이렇게 부릅니다. “일종의 폭력이라고 생각해요.” 광고 회사 시절을 학대라 불렀던 것과 같은 단어의 계열입니다. 소설로 풀어보고 싶은 ‘소설 모멘트’가 바로 이 지점에 있다고 작가는 말합니다.





2 responses to “소설가 이수정 Part 1”
재밌게 잘 들었습니다. 소설도 읽으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LikeLike
오! 재밌게 들으셨다니 감사합니다. 다음편들도 재밌게 들어주세요. 오늘 아마 또 이수정 작가님의 새로운 에피소드가 올라올거에요.
LikeLike